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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생애, 철학사상 그리고 영향

by Green DJ 202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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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누엘 칸트

 

이마누엘 칸트 생애

 

1724년 프로이센의 상업 도시 쾨니히스베르크(현재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수공업자인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 칸트와 어머니 아나 레기나 칸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1명 자녀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습니다(11명 자녀 가운데 어른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4명뿐이었습니다). 칸트는 '에마누엘'(Emanuel)이란 세례명을 받았으며, 히브리어를 공부하고서 '이마누엘'(Immanuel: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바꾸었습니다. 어렸을 때 칸트는 돋보이지는 않았으나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경건주의를 따르는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기독교의 경건주의는 종교적인 헌신과 겸손함 그리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칸트가 받은 교육은 수학과 과학보다 라틴어와 종교였고, 엄격하고 가혹한 훈련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칸트 부모는 청교도적 생활을 하였으며, 이는 유년 시절 칸트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칸트는 1732년 어머니와 친분 있던 신학자 슐츠가 지도하던 사학교 프리드릭스 김나지움에 입학하고 1740년에 졸업했습니다. 같은 해 쾨니히스베르크의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수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마르틴크누첸에게 논리학과 수학을 지도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자연과학에 관심 두었고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에 매료되었습니다.

후대 전기 작가 기록에 의하면, 칸트는 1746활력의 진정한 측정에 관한 사상이라는 졸업논문과 함께 대학을 졸업했으나, 아버지가 사망함에 따라 학자금과 생계유지를 위해 수년에 걸쳐 지방 귀족 가문의 가정교사 생활하면서 홀로 철학 연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칸트는 곧 대학으로 돌아왔으며 1755612, 일반자연사와 천체이론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음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인식의 으뜸가는 명제의 새로운 해명이라는 논문으로 대학에서 강의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후 대학에서 일반논리학, 물리학, 자연법, 자연신학, 윤리학 등 여러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1756년 크누첸이 사망하자 그 후임으로 교수직을 얻으려 노력했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1764년 프로이센의 교육부에서 제공한 문학 교수 자리를 거절할 정도로 철학 교수직을 갈망했습니다. 18세기까지도 수학과 물리학은 자연철학으로 간주하 철학 영역에 속했습니다. 1766년에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왕립도서관 사서로 취직하여 1772년까지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그사이 칸트는 원하던 대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철학 교수직을 얻었으며, 이때 발표한 교수취임논문(1770)은 칸트 비판 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저술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0여 년간 1780년대에, 즉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윤리 형이상학의 정초, 자연과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점점 명성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순수이성비습판(초판:1781, 재판:1787), 실천이성비판(1788), 그리고 판단력비판(1790)에서 그의 비판철학의 정수를 선보였습니다. 눈부신 학문적 성취와 더불어 1786-8년에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총장에 선출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칸트는 한 번도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으며, 알려진 것처럼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강의와 사유에 전념했습니다. 다만 1792년에 논문출판과 검열을 두고 학부 관리처와 작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제의 논문은 인간 본성에 있어서의 근본악에 관하여란 제목으로서 당시의 계몽주의 사상과 종교에 관한 칸트의 솔직한 견해가 대학 관리처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커피와 담배를 즐겼던 칸트는 1804212일 새벽 4, 80세를 향년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칸트 철학

칸트의 사상 체계는 흔히 크게 세 갈래로 나눠집니다:

인식론: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윤리학: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종교철학: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 중 첫째 질문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순수 이성 비판에서 주로 다루었습니다. 첫째 질문은 자신이 문제 삼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인간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는 다시 말해, 우리는 어디까지 알 수 있으며, 또한 어떤 것은 알 수 없는지를 논의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순수 이성 비판은 첫째 질문을 본격적으로 논의면서, 인간 이성의 능력이 지닌 범위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합니다. 이 점에서 순수 이성 비판은 인간의 인식과 앎에 대한 논의를 첫째 질문을 통해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이성주의(합리주의) 철학의 전통에서 이성은 그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채, , 영혼 불멸, 자유와 같은 무제약자들을 함부로 추구했다는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과 같은 무제약자들은 인간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는 초 감성적인 대상들로, 유한한 인간 이성은 자신의 한계로 인해 결코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인간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는 오직 자연 인과성의 지배를 받는 감성적인 경험적 대상들밖에 없으며, 이러한 범위를 넘어서서 초 감성적인 대상들을 인식하려는 모든 시도은 독단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질문인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는 도덕적 물음으로, 도덕 형이상학 정초실천 이성 비판에서 다루어집니다. 둘째 물음에 대한 답변, 즉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결국 도덕적 행동이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동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도덕적 행동은 무엇인가? 바로 도덕법칙에 따르고자 하는 행위 원리를 받아들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덕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 정초실천 이성 비판전반부 순수 실천이성의 분석론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물음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는 칸트의 여러 저서에서 복합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칸트의 저서에서 이 셋째 물음이 최초로 등장한 저서는 순수 이성 비판으로,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의 후반부인 방법론중에서도 순수 실천이성의 규준장에서 이 물음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순수 이성 비판에 따르면, 우리가 둘째 물음에 따라 도덕성을 확보하는 일은 우리가 "행복해도 좋을 자격"을 갖추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충분히 도덕적 행위 원리를 받아들여 행복해도 좋을 자격을 가지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도덕성에 상응하는 정도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희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행복이 우리에게 실제로 주어진다고 보지 않고, 희망의 대상이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칸트는 전통적인 행복주의 윤리학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전통적인 행복주의 윤리학은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될 경우 현세의 삶에서 도덕적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즉 행복주의와는 달리 칸트는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감성계에서는 결코 도덕성에 상응하는 행복이 도출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가 도덕적으로 산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행복해도 좋을 자격, 그리고 그 자격에 행복이 따라오리라는 희망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칸트에 따르면, 도덕성에 상응하는 행복은 결코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지만, 행복의 분배에 개입하는 전능한 신을 가정한다면 각자의 도덕성에 상응하는 정도만큼 그 행복을 희망할 수 있게 되므로, 이러한 도덕에 상응하는 행복이 보장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신의 현존을 요청해야만 합니다. 이 점에서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은 신의 현존을 요청하는 요청이론으로 이행하게 되며, 이는 칸트의 고유한 종교철학 이론인 도덕 신학을 구성하는 주요한 체계가 됩니다. 그러므로 셋째 물음은 종교적 물음과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순수 이성 비판에서 제시된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은 결국 행복할 자격과 행복이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최고선이라는 도덕적 이상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 번째 물음은 최고선의 문제를 다룬 여러 저서에서 간접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실천 이성 비판의 후반부인 변증론에서는 영혼 불멸과 신의 현존의 요청을 통해 최고선의 실현에 대한 희망으로 나타나며,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는 근본악의 문제와 그 원인인 악의 원리에 대항하는 윤리적 공동체 구현 내지는 최고선에 대한 희망으로, 판단력비판에서는 자연과 자유의 통일을 통해 이 지상에서 실현될 수 있을 자연의 궁극목적이자 목적들의 나라인 최고선에 대한 희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영향

이마누엘 칸트는 그의 철학적 업적으로 인해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의 영향은 철학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미치고 있습니다. 다음은 칸트의 영향력의 몇 가지 예시입니다.

철학 분야: 칸트는 근대 철학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철학적 이론들은 현대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칸트의 "순수이성의 비판"은 현대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이성과 역할에 대한 사상은 많은 철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정치 철학 분야: 칸트는 인권, 자유, 평등과 같은 개념들을 철학적으로 정의하고, 이들을 정치적으로 적용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제안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으며, 칸트의 정치 철학은 많은 정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종교 철학 분야: 칸트는 종교 철학에서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철학적 사상은 인간의 영적인 면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칸트는 종교적 철학에서도 중요한 개념들을 제시하였으며, 이들은 현대 종교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교육 철학 분야: 칸트는 교육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교육이 인간의 이성과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에 따라 교육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들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교육 철학은 교육 분야에서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칸트는 현대 철학과 정치, 종교, 교육 등의 분야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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